일제강점기 시대 인물인 우난영은, 살기 위한 수단으로 너도나도 일본식 성명으로 바꾸라는 강요에 따라 면사무소로 달려가는 민중들과는 달리 산중으로 도망가 그곳에서 움막을 짓고 세월을 보낸다. 댕기 머리 소년 시절에 서당에서 한학·논어 등을 익혀둔 학문을 써먹지 못하고 산나물과 계곡 물을 떠 마신 은거 아닌 은거 생활은 그야말로 혹독했다. 특히, 공부를 시켰으면 조선 시대 중기 문인이자 유학자·화가·작가·시인이었던 신사임당 못지않은 인물이 됐었을 아내의 손 망가진 고생은, 차마 눈 뜨고 볼 수가 없었다. 내다보는 식견이 한때기 땅에 불과한 무식한 농민이 되느니, 그럴 바에야 신분 낮은 면서기라도 괜찮다며 틈틈이 하늘천 따지를 가르치는 세 자녀의 장래 문제도 그에 못지않게 심금을 갈기갈기 찢었다.
우난영의 장남 남기는, 14세가 된 당해 초가을에 아비 집을 무단가출한다. 한창 성장기에 악 영양인 곤궁한 굶주림으로부터의 탈출이었다. 알곡이 누렇게 여문 높푸른 하늘 아래 세상은 황금 들판이었다. 그는, 제법 큰집으로 무단 들어가 천생 고아를 받아달라고 다짜고짜 매달린다. 흰 수염의 농부는, 그날로 헛간 옆방을 내주고 숫돌에 낫을 가는 요령부터 가르친다. 곧 시작될 벼 베기 준비였다.
머슴살이 오 년째를 맞은 남기는, 주인 내외 세 딸 중 평소 연모해온 차녀의 처녀성을 강제로 빼앗는 역적의 죄를 저지르고 만다. 거주 방 옆 헛간 짚더미 속에서 돌이킬 수 없는 큰일을 저지르고 만 것이었다. 대로한 노인은, 반년 남짓의 시차를 두고 지켜본 딸년의 배 불어 오른 임신을 알아차렸다. 여편네의 눈썰미 덕분이었다. 노인은, 어느 날 한 지붕 아래에서 떨어져 지내게 한 17세 딸과 남기를 앞에 불러 앉혔다. 그는, 시집을 보낼 수 없게 된 딸년을 책임지겠느냐는 다짐을 묻고 남기의 솔직한 용기에 감명을 받는다.
처가 사리는 순조로웠다. 남기는, 장인의 농사면적을 애초에 2마지기를 5마지기(두락斗落)로 크게 확대했다. 쌀농사 외에 감자·옥수수 등의 작물을 팔아 가격에 맞추어 사들인 소·염소·닭 등의 축사 장도 지어 올렸다. 장인은, 대만족의 빛을 늘 입가에 달고 다녔다.
우남기는, 슬하에 이남삼녀의 자녀를 뒀다. 그 혼전의 딸이 우선옥이고, 그 남편은 군인에서 농부로 변신한 원세훈이다.
우성한은 일찍이 시작한 박스공장 사업장을 외국인 종업원의 불장난으로 졸지에 잃고 만다. 그의 의기소침에 빠진 자살을 말리며 다독으로 일으켜 세워준 인물은 초등학교 동창이며 나중에 부부가 되는 조금옥이다.
우성일은 시인이자 대학교수로 등장한다. 합격한 대학입학 전에 가족들과의 연을 일절 끊고 고학으로 대학교수 직위를 얻은 그는 고향 후배이며 과외로 시를 배우는 양문일의 결혼 한 달여 만에 스스로 생을 끊는 바람에 과부로 남은 문행숙과 부부 연을 맺는다.
김성호
시인, 소설가
성미출판사대표
월간 ‘한국 시’로 등단
| 저서|
장편소설
방황하는 영혼들
시집
불타나이다
내 혼아 깨어라
아침을 맞으면서
인적이 끊기면
마음의 사랑을 찾아서
성산에 오를 자 누구리오
교회 가는 할머니
푸른 영혼의 지혜